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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oruen 키리시마2p×에노키×사에키2p

새빨갛게 부어오른 무릎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강렬하고 둔탁했다.

어디가 잘못 된 거지. 설마 하고 있지만, 뼈가 부러진 건 아니면 좋겠는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에노키는 피도 나지 않는데 퉁퉁 부어오른 왼쪽 무릎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조심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후회 해봐도 다친 무릎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얌전히 앉아서 회복을 기다려야 할까. 엉거주춤 일어나 벽을 짚고 일어선 에노키는 앉을 곳을 찾다가 제게 달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노키! 괜찮아?”

 

다급한 표정과 당황한 목소리. 다친 에노키보다도 더 당황한 얼굴로 다가온 키리시마는 불편한 자세로 선 그녀를 보더니 대뜸 두 팔을 덥석 잡았다.

 

“세상에, 다친 거야? 많이 아파? 어디 다쳤어?”

“아니, 그… 진정해요 키리시마”

“진정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가 다쳤는걸!”

 

아아. 이래서야 무릎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겠는데. 에노키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눈을 한 키리시마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상냥한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뭣보다 그라면 임무고 뭐고 내팽개치고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서 귀환하자고 할 수도 있었으니 ‘괜찮다’라는 선택지 밖에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다행히 피가 안나니, 말만 잘 하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에노키는 부어오른 무릎을 슬쩍 뒤쪽으로 빼며 답했다.

 

“괜찮아요, 계단에서 굴렀는데, 무릎을 좀 부딪쳐서… 피도 안 나고, 금방 나을 거예요!”

“정말이지?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당연하죠!”

“정말? 그, 못 걷겠으면 내가 업어줄게. 아, 일단 앉을까? 여긴 너무 더러우니까, 저기 밖에 쉴만한 벤치가 있는데…”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에노키는 자신을 향해 친절의 말을 늘어놓는 그가 싫지 않지만, 역시 조금 부담스러워져 시선을 피해버렸다. 자신은 정말 괜찮은데. 왜 이렇게 호들갑인 걸까. 말에서, 눈빛에서, 행동에서 절절히 느껴지는 호감. 에노키는 그 솔직한 감정들에 제 얼굴이 다 붉어지려고 했다.

 

“뭐야 시끄럽게, 무슨 일이야?”

 

너무 소리 높여 대화했나? 바깥에서 망을 보던 사에키가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화났나?’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걱정되어 눈치를 살피는 그녀와 달리, 키리시마는 에노키를 끌어안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에노키가 다쳤어. 사에키, 혹시 붕대 없어? 약이라도!”

“없어. 그런 건 마츠모토나 가지고 다니지 내가 왜 가지고 다녀?”

 

시니컬하게 키리시마의 기대를 저버린 사에키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녀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흐음’ 새빨갛게 부어오른 무릎과 까진 손바닥. 대강의 정황을 읽은 사에키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에노키? 무릎을 다친 것 같은데”

“아, 응… 괜찮아요, 혼자 설 수 있는데…”

“아냐, 그렇게 남자 품에 안겨서 할 말은 아니잖아 그거?”

“에? 아니, 이 이건 키리시마가…”

 

귀 끝까지 달아오른 얼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에노키는 키리시마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사에키의 손을 잡지도 못했다. 곤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키리시마는 눈치는 없는데 지독하게 다정하고, 사에키는 짓궂기 그지없다. 둘 다 제게 소중한 동료인 이상, 누구 편을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인데.

난감해 하는 에노키를 대신해 입을 연 건 키리시마였다.

 

“에노키라면 걱정 마. 내가 안고 다닐 거야. 다 나을 때 까지, 아니 이번 임무가 끝날 때 까지. 다쳤을 땐 무리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에노키?”

“아니… 저 이제 진짜 괜찮거든요?! 혼자 설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어? 에노키 부끄러워하는 거야? 괜찮아. 내 앞에선 그렇게 수줍어 할 필요 없어. 물론 이런 에노키도 귀엽지만…”

 

‘아아, 정말!’ 비처럼 쏟아지는 키리시마의 다정한 말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에노키는 그의 품을 빠져나가버렸다. 혹시 그는 전생에 시인이었던 게 아닐까? 그게 아닌 이상 저렇게 사람 속을 간질일 수 있는 말만 할 수 있을 리 없다.

 

“이런, 키리시마. 에노키를 부담스럽게 하면 안 되잖아. 응?”

 

슬금슬금 물러서는 에노키의 허리를 낚아챈 사에키는 보라는 듯 그녀를 제 가까이 끌어당겼다. 허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무릎까지 미끄러지듯 손을 움직이며 에노키를 쓰다듬는 사에키의 손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사심이 가득했다.

 

“무릎은 아직 부어있는데, 괜찮은 거 맞아? 혹시 키리시마가 안아주는 게 싫어서 거짓말 한 거라면 나에겐 솔직하게 아프다고 해 줘도 되는데”

“그, 그럴 리 없잖아요…! 자, 잠깐. 마, 만지지 마요…!”

“잠깐 무릎이 괜찮은지 보는 거야. 뭘 부끄러워하는 거야?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거야?”

 

아. 역시 그냥 키리시마 품에 안겨있는 편이 좋았을지도. 에노키는 몸을 낮추고 제 다리 여기저기를 쓰다듬는 사에키를 슬쩍 째려보았다. ‘이런’ 정면으로 그 따가운 시선과 마주친 사에키는 과장스러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씩 웃어보였다. ‘무섭게 그러지 마’ 가늘게 눈을 뜨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몽마와 같이 달콤하다. 정말이지, 소악마가 따로 없는 남자다. 에노키는 기껏 식으려는 얼굴의 열기가 다시 끓어오르는 걸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 마, 사에키!”

 

너무 노골적으로 더듬거렸기 때문인가. 키리시마는 참다못해 에노키를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오호’ 작은 감탄사. 키리시마의 질투가 흥미로운지 사에키는 그의 돌발행동에 화도 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는 건 또 아니다. 사에키는 에노키가 완전히 키리시마 쪽으로 끌려가기 전, 그녀의 왼팔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키리시마, 질투하는 남자는 꼴사납다고?”

“에노키가 싫어하잖아, 하지 마”

“흠, 글쎄 진짜 싫어하는지 들어볼까? 에노키, 내가 싫어?”

“그런 식으로 묻는 건 치사하잖아?!”

 

오가는 치밀한 설전. 줄다리기 하듯이 양쪽에서 자신을 잡아당기는 팔에는 양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분명 난 계단에서 구른 것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두 남자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속으로 중얼거린 에노키는 그사이 회복되어 멀쩡해진 무릎을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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