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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희 손청운X 최수진 2p

눈을 돌려도 사람밖에 없는 낙양의 기방. 그 안에서 가장 빛나는 손이 있다면 단연 월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빛나는 기생은 누구일까. 그렇게 물으면, 월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아무에게도 다 내 주지 않는 그 아이가 아니냐?”

 

‘아무에게도 다 내 주지 않는 아이’라고 불리는 기생의 이름은 수진이었다. 양반가에서 쓸 법한 이름이 있고, 글을 읽을 줄 알며, 심지어는 악기도 기가 막히게 잘 다루는 이였다. 그녀에게는 여느 기생에게나 존재하지 않는 품위가 있었다. 월은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날, 곧장 그녀를 불러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 희롱할 생각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수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고운 사내 옆에 있으면 제가 얼마나 추해 보이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천하의 한량이라 손꼽히는 월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 내뺀 게 틀림없다고 믿었다. 물론 그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수진이 더욱 월을 피한 까닭이 있다면, 그가 자신을 시험하려 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자신을 평하는 이들을 굉장히 좋아하지 않았다. 반역 모의라는 누명을 쓰고 부모가 참살되던 날, 집안 노비의 딸이라 속였고 노비라는 말에 기방에 팔려갔다. 

 

‘관기나 이거나 별 다른 게 없지.’

 

그녀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 기방에 들어서던 날, 먼저 있었던 기생들이 수진을 둘러싸고 불렀다.

 

“얘.”

 

수진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기생들이 수진을 향해 쏘아붙였다.

 

“사람이 부르는데 대꾸를 해야 할 것 아니야?”

 

기생들의 말에 수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사람이라는 거야? 개, 돼지 취급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뭐라고?”

“착각하지 말아줘. 너희들은 위아래 따지고 싶은 모양이지만, 어차피 버려지면 끝인 신세인 건 다들 마찬가지니까. 아, 물론 높으신 분들의 작은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네. 그런데, 내가 들어올 때까지 아무 일도 없는 거 보면 이미 다 틀렸다고 봐도 되겠는걸?”

“뭐, 뭐 저런 게 다 있어? 반역하다 죽은 집 딸년 주제에!”

 

수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차없이 기생을 밀어 넘어뜨렸다. 그에 다른 기생들이 그녀를 똑같이 밀어내려 하자, 수진은 가뿐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기생들 쪽으로 가지고 있던 장도를 집어던졌다.

 

“어차피 기생이 된 이상, 정절 따위 당분간은 무시해도 그만이잖아?”

 

비아냥 가득한 말투로 내뱉은 수진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 때 이후로 수진을 불쾌해하는 기생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은 이미 기생이 되기 전부터 압도적이었기에 행수는 내심 수진을 차기 행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심지어 바느질이나 수예, 글 짓는 솜씨도 탁월했다. 그러나 수진은 행수의 예상보다 훨씬 냉정한 반응이었다.

 

“기방의 행수를 하면 돈냥이나 깨나 벌겠습니다만, 그 자리에 앉아 저보다 나이 어린 아이들 바라보며 ‘세월이 참 무정하구나.’ 같은 말이나 내뱉는 건 성미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자신을 찾는 사내들을 가차 없이 내쫓고 있던 수진이었다. 그녀는 조금 지친 얼굴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고운 얼굴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사내들이란 귀찮기 그지없어.”

 

냉정한 표정으로 기방을 빠져나간 수진은 수양버들이 가득한 연못가로 향했다. 그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절로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연못가에 가 피리를 불려고 했는데, 먼저 자리에 있던 사내 때문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사내는 수진이 근처에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수양버들의 나뭇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나뭇잎만 떨어뜨릴 생각인 것 같았다. 단정하면서도 날렵한 몸짓에 수진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뭇잎이 하나하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바람이 불어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한참 나뭇잎을 떨어뜨리던 사내가 수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진은 눈을 마주치자마자 알았다. 이 사내는 저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래서였을까? 수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흔하지 않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렇지만 그 미소는 순수하기보다는 사내를 한 번 골려주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에 생긴 웃음임을 사내는 죽어도 모를 터였다.

 

“손 장군님 댁의 아드님이시지요?”

“저를 아십니까?”

“기방에서 귀한 공자님들을 모를 리가 있겠사와요?”

“기방?”

“쇤네를 모르시나이까?”

“송구하오나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흐응.”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는지 수진은 그의 앞에 서서 물었다.

 

“그러니까, 공자님의 존함이 청운 공자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낭자.”

“고작 기생에게 낭자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기생이라니요?”

“어머, 정말 모르고 계시나이까? 쇤네는 기생이나이다. 월 공자님께서 자주 출두하시는 기방의 기생이어요.”

 

가지고 있던 쥘부채를 펼쳐들고 입가를 가린 수진이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에 청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수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공자님은 줄곧 예에서 수련을 하시어요? 쇤네도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공자님을 뵌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그렇게 말하는 수진은 청운과 시선을 마주쳤다. 청운은 더욱 얼굴이 붉어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 그럴수록 수진은 더욱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연지가 발려져 있었고, 몸에는 분내가 났다. 청운에게 수진은 평소에 만나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그리고 무엇인가 더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청운은 그녀가 가진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지켜보던 수진이 부채를 접고 품에 넣었다.

 

“공자님께 실례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야겠어요.”

 

그렇게 말한 수진은 청운 앞에 절을 올렸다. 기방에 들어선 이후부터 누구에게 절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그녀였다. 수진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분을 내가 망쳐보고 싶다.’

 

청운은 저에 비하면 무척이나 순수해 보였다. 감정 하나하나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꼴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랬다. 그녀가 뒤돌아 왔던 길을 다시 가려고 했을 때, 작게 들린 심호흡 소리에 수진은 한층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발걸음에 흔치 않게 생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은 며칠 뒤에도 만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진이 청운에게 다시 나타났다. 기방에서 일하는 아이 하나에게 맛난 유밀과 하나를 건네주면 직접 나서지 않고도 청운의 생활 반경을 알아낼 수 있었다. 기녀복 중에서도 가장 수수해 보이는 옷을 입고 옅은 빛의 연지를 발랐다. 그렇게 입고 나니 어쩐지 부모가 희생되기 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때의 모습으로. 수진은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정성껏 땋았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해 청운의 앞에 나타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그의 허를 찌를 수 있다면 좋았다. 애초에 수진의 지금의 목표는, 청운에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우울하고, 역겹고, 온갖 더러운 기분들을 알려주는 것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에게 다가가 수진은 말을 걸었다.

 

“공자님!”

“아, 당신이시군요.”

 

그 말에 수진은 그를 향해 걸어가던 것을 멈췄다. 청운이 부른 호칭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그런 호칭으로 자신을 부른 일이 없어 수진은 저도 모르게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다시 미소 띤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도 수련하고 계시었어요?”

“예. 당신은 기방에서 오는 길인가요?”

“쇤네가 있을 곳이 게가 아니면 또 어디가 있겠사와요? 아, 공자님. 일전에는 이것의 옷차림이 다소 산란하셨을 것 같아 이리 입어 보았는데 어떠셔요?”

 

수진은 그렇게 묻더니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청운의 얼굴이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욱 붉어져 있었다. 이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진 그녀가 폭소를 터뜨리려던 걸 참고 말했다.

 

“어지럽지는 않으시지요?”

“예? 아, 예.”

“얼굴 붉어지시었어요. 어디 몸이 미령하신가요?”

“아, 아닙니다.”

“제가 공자님을 이리 다시 만나기 전까지 무리하신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흐응.”

 

수진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청운에게 다가갔다. 그에 청운은 살짝 뒷걸음을 쳤다. 수진에게 느껴지던 위화감이 그를 에워싸는 기분이었다. 그가 뒷걸음을 치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청운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더 다가가려는 순간, 수진이 발을 헛디뎠다. 그리고 그녀는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당황한 청운이 그녀를 연못에서 빼내려는데, 수진이 그를 잡아당겨 함께 물에 빠지게 했다.

 

“앗!”

“아하하, 다 젖으셨네요. 공자님?”

“그, 놀리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그나저나 지금은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옷가지 정도야 가지고 있지요. 따라오셔요.”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수진이 먼저 연못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청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맞잡고 빠져나왔다. 수진이 기방에 사내를 데려오자, 모든 기생들이 수군거렸다. 한 번도 사내 곁에 나란히 걷는 일조차 없던 그녀였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그녀가 데려온 사내는 명문가인 손 가의 사내였다. 어쩌다 둘이 같이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둘 다 옷이 젖어 있어서 한바탕 무슨 일이 있어서 그들은 온갖 망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생각을 알아챈 수진이 뒤를 돌아 기생들을 쭉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허튼 생각일랑 감추지 그러니? 무척 불썽사납다만.”

 그렇게 말한 수진은 다시 청운과 눈을 마주쳤다. 예의 상냥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그녀가 말했다.

 

“자, 따라오셔요. 옷가지 정도는 찾을 수 있을 터이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처소에서 깔끔하게 완성된 도포와 옷가지들을 건네주었다.

 

“손이 오시면 열어놓은 욕간통 정도는 있을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시어요.”

“본래 그리 날 선 얼굴을 하고 계신 겁니까?”

 

청운의 물음에 수진은 다른 옷가지를 집으려다 말고 청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물을 머금더니 이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눈물에 청운이 안절부절하며 수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수진의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져 그의 옷소매에 닿기 시작했다. 한참 눈물을 떨구던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송, 송구하여요. 허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진 꼴을 당하고야 마는걸요. 강해 보여야 그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답니다.”

 

결국 천천히 흐르던 눈물은 이내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수진은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청운은 등을 토닥이는 손길을 이어갔다. 한참 울던 그녀가 겨우 눈물을 그치고 청운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쇤네는 역시 어딜 봐도 천한 계집이지 않사와요? 그런 것조차 지혜롭게 넘기지를 못하다니. 더군다나 공자님께 이리도 무례하였고 게다가 부끄러운 꼴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의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생각한 내가 나빴어요. 그러니 눈물을 거두십시오.”

 

청운의 토닥임에 수진은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심호흡을 크게 해 보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 종종, 쇤네가 공자님을 찾아 뵈면 지금처럼 곁에 있어 주시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수진이 조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쥐고 있던 옷가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욕간통이 비어 있는지 보고 오겠어요.”

 

그녀는 방을 나와 손들이 쓰는 욕간방으로 향했다. 눈물져 있던 얼굴은 완전히 말라 있었다.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수진 특유의 비아냥과 조롱이 담긴 미소였다. 그녀는 욕간방에 사람이 없다는 표식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망가뜨리기 전에, 아주 조금은 가지고 놀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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